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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게 하는 글

법륜스님 명언 (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법륜스님 명언 (사춘기, 지켜봐 주는 사랑)

 

pixabay

사춘기 아이들은 특징이 있습니다.

 

어릴 때와 달리 감정과 생각이 자아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일어납니다. 인생을 회의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안 하기도 하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해서 눈뜨기도 합니다.

 

이럴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켜봐 주는 겁니다.

 

넘어지고 자빠질 때마다 일으켜 주는 게 아니라 옆에서 지켜봐 주는 거예요.

 

지켜봐 주는 것이 마치 부모 노릇을 안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마음이

 

불안할 수도 있고 마음이 아플 거예요. 하지만 자식을 위해서 인내해야 합니다.

 

이때 지켜봐 주지 않고 간섭하면 아이는 결코 홀로 서지 못합니다.

 

부모는 따뜻하게 보살핀다고 하지만, 아이는 자립하려는데 부모로 인해 방해받으니까 억압으로 느낍니다.

 

그러면 부모는 버둥거리는 자식을 돌봐 주느라 힘들고, 아이는 부모의 억압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부모는 어릴 때 따뜻하게 보살펴 주던 게 습관이 되어서, 얘가 컸는데도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사랑밖에 할 줄 모습니다. 

 

 

자식이 자립해야 할 시기에 내버려 두지 않고, 연애할 때 못하게 하고, 

 

방황해야 될 시기에 방황을 못하게 한 부모 탓입니다.

 

그 과보로 자식은 나약해지고, 부모는 늙어서까지 그 대가를 치르는 거예요.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막으면 자식은 반항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립도 못합니다. 자립하려는 것을 막았으니 반항심은 생기는데 막상

 

어떻게 스스로 서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부모에 대한 고마움은 없고 원망만 가득해요.

 

결국엔 자립을 못하니까 자식은 부모에게 의지해 버립니다.

 

 

자식을 보호하고 감싸기만 하면 죽을 때까지 자식의 짐을 

 

지고 가야 합니다. 따라서 어릴 때 자식이 자기 생각이나

 

주체의식도 없이 부모 말을 잘 듣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중학생 정도 나이가 되면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를 설득의 수단으로

 

삼거나 부모의 말을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얘기를 한번 해보는 거예요.

 

 

무조건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라, 이야기할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한다며 부모의 생각을 강요하면

 

아이는 반발해서 튕겨나가 버립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스스로 알아서 살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는 다만 지켜보면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뿐이에요.

 

자식이 다 컸는데도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누르는 것은 집착이에요. 여려서 돌봐 줘야 할 때 돌보지 않으면

 

병이 되고, 다 큰 후에 자꾸 간섭을 하면 억압 심리가 생겨 저항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가능하면 자녀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에요.

 

어떤 일이든 지켜보다가 세 번, 네 번 문제가 반복되면 그때 주의를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시행착오, 즉 실패한 경험을 갖고 하고 그 과정에서

 

뭔가 자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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